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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동 통장자율회장 허재봉

인천 중구 최초의 유도 8단… 영종동의 마지막 ‘지명직’ 통장

작성일 : 2021-04-29 17:08 수정일 : 2021-11-20 09:56 작성자 : 박성미 기자 (saidanews@naver.com)


사이다 人터뷰의 두 번째 주인공은 36년을 교직에 몸담으면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퇴임 후 고향인 영종도의 본동인 영종동의 마지막 지명직 통장을 맡고 있는 허재봉 영종동 통장자율회장을 만나‘인천 앞바다와 같은 삶’을 살아온 그의‘영종도’사랑이야기를 들어본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떳어도 고뿌 없이는 못 마십니다.

~ 징지기 장장 장장장 지기지기 장장 장장 ~”

일명 속사포 코믹송으로 한국 최초의 래퍼 故 서영춘 이 즐겨 하던 만담에 등장한

‘인천 앞바다의 사이다’와 같은 삶을 살고 계시는 

영종도의 본동인 영종동의 마지막 지명직 통장을 맡고 있는

허재봉 영종동 통장자율회장을 만나 짧은 만남,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1)만수중 축구부 부장 재직시 2002년 무학기 대회 만수중 우승(국가대표 골키퍼 김진현 지도) / (2)만수중 제자 최태욱 2002년 한·일월드컵 국가대표 선발 / (3)2002년 한·일월드컵 기념 서울, 인천, 요코하마 3개 도시 친선 축구대회(2000년 만수중학교 참가) / (4)유도 공인 8단 허재봉 회장

 

보람 가득했던 인생의 황금기, 36년 교직생활

허재봉 회장은 일제 강점기인 1948년 3월 20월 영종도의 돌박재(하늘초등학교 맞은 편 서당골 인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영종초등학교를 마치고 일찍이 뭍으로 나가 동산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유도 명문 용인대학교의 전신인 대한유도대학을 졸업한 작은 체구의 그야말로 돌 같은 몸집을 가진 진정한 유도인이다.

대학 졸업 후, 교직에 들어선 허재봉 회장이 최초로 부임한 지역은 백령도와 대청도에서는 체육과 교련을 담당했으며, 이후 강화도를 거쳐 만수중학교에서 축구부 부장을 맡았다.

백령도와 대청도에서의 교직생활을 설명하면서, 허재봉 회장은 당시 학생들이 교련수업시간에 군복과 실제 M16 소총으로 집총훈련을 한 얘기와 함께 접경지역의 특성상 노인 분들도 지하 벙커시설에 대피 훈련을 한 상황들을 설명하면서 기자가 경험한 도심 속 민방위 훈련과는 사뭇 다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도서지역 선생님들의 경우 전공과는 무관하게 여러 과목을 가르치던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었다.

이후 허재봉 회장은 강화도 근무를 거쳐 1995년 인천직할시에서 인천광역시가 된 시점에 만수중학교로 부임한다. 만수중학교 시절 축구부 부장을 맡은 허재봉 회장은 2002년 월드컵 4강의 멤버인 최태욱과 베이징 올림픽 김승룡 그리고 벤투호의 골키퍼 김진현 등 국가대표 선수들로 성장한 어린 축구 꿈나무들을 이끌고 그들과 함께 외국의 여러 학교와 많은 교류를 할 수 있었다.

한평생 삶의 여정 속에서 아름답게 기억하고, 기억되는 시간을 우리는 그 사람의 황금기라 한다. 그때 그 시절을 설명하는 허재봉 회장의 모습이 그러한 느낌을 전해준다.

 

'영종진헌양회'를 시작으로, 마지막 지명직 통장까지

2010년 8월 31일 그렇게 세월은 흘러 36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자신이 때어난 고향 영종도로 돌아온 허재봉 회장은 구한말 일제가 당시 조선을 침략을 위해 수로측량이란 이유로 파견했던 ‘운양호’의 강화도 습격 그리고 영종진 피격사건 당시 전사한 36인을 추모하는 영종진헌양회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제5대 인천시의회 시의원을 지낸 인천문화발전연구원 이병화 이사장과 지역의 원로 故 추금희 선생 등과 함께 영종 내 학생들에게 ‘영종진피격사건’의 전말과 관련 백일장 등의 여러 행사를 개최하면서 지난 역사의 반추 및 강화도 조약 그리고 인천항 개항을 통한 대한민국 근대화의 시발점인 된 ‘운양호사건’에 대한 역사적 진실과 의미를 알리는 운동에 헌신하게 되었다.

이후 허재봉 회장은 2015년 4월 영종동의 마지막 지명직 통장으로 농사의 계절이 시작되는 시기엔 퇴비와 농약을 보급하고 수확의 계절이 되면 고구마 박스 등을 배포하는 등 도시 속 일반 통장들이 하지 않은 농촌지역 ‘이장’의 역할과 도시의 통장들의 역할을 병행하는 지역주민이 지명 · 선출한 마지막 지명직 통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연로한 독거노인들이 많은 지역의 통장으로 때로 형님과 형수님 그리고 친구와 같이 생각하는 이들과 함께 유도로 다져진 건전한 생각과 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루하루를 바삐 보내고 있는 허재봉 회장은 ‘돌꽃’이란 아름다운 지명의 석화노인정의 노인회장을 겸임하는 등의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8년 영종동에서 영종1동(중산동 : 하늘도시 일부)이 분동되는 과정에서 당시 이진순 영종동장과 42명 통장들의 중지를 모아 영종1동으로 정하고, 향후 영종2동 영종3동 등 순차적으로 분동에 따른 행정동 명칭을 정하는 기틀을 마련하는데 공헌한다. 

지역의 정체성과 그 지역의 미래의 성장을 가름하는 ‘행정동의 명칭’을 어떻게 정하는 가의 문제는 기존 행정동의 명칭과 조화 그리고 일체성 등을 통한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키우는 중요한 요소로 허재봉 회장의 영종미래에 대한 혜안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사이다 人터뷰의 주인공이었던 이정국 영종동주민자치회장은 허재봉 회장님을 “큰형님 아니 지역의 어르신이 계시기에 일하는데 많은 힘이 되고 있다”고 허재봉 회장님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표현했다.

 

이주민들에게 먼저 손 내미는, 영종의 진정한 어르신

허재봉 회장이 살고 있는 돌박재는 옛날 지명은 외중촌이며, 이 마을 여기저기에 박석(薄石 : 얇고 넓적한 돌)이 많은 곳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 오랜 전통 가옥의 난방시설인 구들장을 만들기 위해 널리 씌었던 박석 같이 세상의 온기를 품고 따스함을 전해준 그런 박석 같은 삶을 오롯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허재봉 회장님과 같이 지역을 지키는 본토박이 분이 있기에 이주민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고 있는 영종은 계속 번성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언제 어느 자리에서 만나든 언제나 늘 먼저 웃으며 손을 내밀어주는 넉넉함과 따스함을 간직한 허재봉 회장님이 있기에 이제 10년의 남짓 세월을 살고 있는 기자 또한 영종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어디서 나에게 어디 사냐고 물을 때 영종도… 영종에 산다고 자신이 말할 수 있도록 그 자리를 내어준 허재봉 회장과 같은 분들이 있기에 앞으로도 난 영종에 살 것이다.

 박성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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